가족을 버린 아버지와 가난에 짓눌린 어머니... 로자 보뇌르, 현실을 붓으로 깨우다
무능한 아버지, 절망 속 어머니
아버지는 무능했습니다. 그런 주제에 꿈만 컸습니다. “우리는 서로 돕고 살아야 해. 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늘 노력할 의무가 있어.” 쫄쫄 굶는 아내와 네 명의 아이 앞에서 아버지는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습니다. 그는 일종의 사이비 종교에 가까운 사회 운동, ‘생시몽주의’(Saint-Simonianism)에 푹 빠진 광신도였습니다.

어머니의 죽음, 소녀의 다짐
결국 어머니는 서른여섯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원인은 과로와 영양실조. 돈이 없었던 가족은 어머니의 시신을 공동묘지, 그중에서도 연고가 없는 빈민들이 묻히는 구덩이에 묻어야 했습니다. 열한 살의 딸은 그 비참한 광경을 지켜보며 다짐했습니다. 나는 절대 결혼하지 않겠다고, 남자에게 자신의 삶을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운명을 개척해 나가겠다고 말입니다.

아버지의 부재, 소녀의 방황
그 때 마침 아버지가 로자 곁에 돌아왔습니다. 아버지가 있던 수도원이 정부에 의해 폐쇄됐거든요. 결국 로자는 미술 교사였던 아버지에게 그림을 배우기 시작합니다.“너는 재능이 있어. 여자라고 해서 포기하면 안 된다. 남자들보다 더 훌륭한 화가가 돼야 해.” 아이러니하게도 아버지가 믿었던 종교의 양성평등 사상은 로자의 자립심을 키우는 데 도움을 줬습니다.

도살장으로 향한 붓
하지만 로자는 역동적인 그림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특히 마음에 들었던 건 동물 그림. 그녀는 생각했습니다. ‘제대로 그리려면 껍데기는 물론이고 그 안의 구조, 그러니까 해부학을 완벽하게 이해해야 해.’로자가 향한 19세기 파리 도살장은 여성이 들어간다는 것조차 상상할 수 없는 공간이었습니다. 사방에 피비린내와 오물 냄새가 진동하고, 거친 남성 노동자들의 고함과 욕설이 오가는 곳이었지요.

여성 예술가의 탄생
작업에 몰두하다 보니 여성복의 긴 치마와 꽉 조이는 코르셋이 거추장스러워졌습니다. 그래서 로자는 큰 결심을 합니다. 바지를 입는 것이었습니다. 입고 싶으면 언제든 옷장에서 바지를 꺼내 입으면 되는 지금과 달리, 당시 프랑스는 여성이 공공장소에서 바지를 입는 걸 금지하고 있었습니다. 바지는 공적 공간에서 자유롭게 활동할 ‘남성의 특권’을 상징했기 때문입니다.

말 시장을 누비다
1.5톤이 넘는 말들이 날뛰고, 거친 마부들의 채찍질과 욕설이 오가는 마시장의 진흙탕. 로자는 그 한가운데에서 짧은 머리를 하고 바지를 입은 채 스케치를 했습니다. 1850년대 초 파리의 말 시장을 담은 대작을 구상하던 그녀는 일주일에 두 번씩 이곳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군중 속에 섞여 날뛰는 말들, 이를 제어하려는 사람들의 사투를 철저히 관찰했지요.

로자 보뇌르, 시대를 초월한 예술혼
로자 보뇌르는 현실의 고통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개척해 나갔습니다. 그녀의 삶은 여성 예술가로서의 성공을 넘어, 시대를 향한 용감한 도전이자, 예술을 향한 뜨거운 열정을 보여줍니다.
독자들이 궁금해할 이야기
Q.로자 보뇌르는 어떻게 여성으로서의 한계를 극복했나요?
A.로자 보뇌르는 남성 중심 사회의 편견에 맞서, 끊임없는 노력과 실력으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했습니다. 도살장에서의 해부학 연구, 남장 허가증 획득 등 그녀의 과감한 행동들은 시대를 앞서간 여성의 용기를 보여줍니다.
Q.로자 보뇌르의 대표작 '말 시장'은 어떤 의미를 갖나요?
A.'말 시장'은 로자 보뇌르의 예술적 역량을 보여주는 대표작입니다. 역동적인 말들의 모습은 그녀가 얼마나 현실을 깊이 있게 관찰하고, 이를 예술로 승화시켰는지를 보여줍니다. 이 작품은 그녀를 세계적인 화가로 발돋움하게 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Q.로자 보뇌르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A.로자 보뇌르는 우리에게 현실에 굴하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는 용기를 줍니다. 그녀의 삶은 예술을 향한 열정, 그리고 시대를 향한 끊임없는 도전의 중요성을 일깨워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