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명 높았던 '고문 기술자' 이근안, 88세로 사망… 과거사 논란 재점화
과거사 논란의 중심, '고문 기술자' 이근안 전 경감 별세
군사정권 시절 '고문 기술자'로 악명을 떨쳤던 이근안 전 경감이 향년 88세로 사망했습니다. 현재 서울 동대문구의 한 병원 장례식장에 안치되어 있으며, 그의 죽음은 과거사 논란을 다시금 수면 위로 끌어올리고 있습니다. 이 전 경감은 1970~80년대 치안본부 대공수사관으로 활동하며 강압 수사와 고문을 주도한 인물로 악명 높았습니다. 전기고문, 물고문 등 온갖 잔혹한 수법으로 거짓 자백을 받아내 '고문 기술자'라는 불명예스러운 별칭을 얻었습니다.

민청련 사건, 서울대 무림 사건 등 주요 공안 사건 연루
이 전 경감은 김근태 전 의장이 고문당한 '민주화운동청년연합(민청련) 사건'을 비롯해 여러 공안 사건에 깊숙이 연루되었습니다. 또한, '서울대 무림 사건'에서도 가혹 행위를 주도한 인물로 지목되며 당시 인권 탄압의 어두운 역사를 상징하는 인물로 남았습니다. 그의 행적은 민주화 이후에도 오랫동안 사회적 고통과 진상 규명 요구의 대상이 되어왔습니다.

10여 년 도피 끝 자수, 7년 복역 후 출소
민주화 이후 과거사 정리가 시작되자 이 전 경감은 10여 년간 도피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결국 1999년 자수하여 고문 및 불법 구금 등의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고 7년간 복역한 뒤 만기 출소했습니다. 출소 후 목사로 활동하며 반성하는 태도를 보였으나, 피해자들과 시민사회는 그의 사과와 참회가 진정성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며 책임 있는 자세를 요구해왔습니다.

목사직 박탈 후 건강 악화, 요양병원서 생 마감
결국 이 전 경감은 목사직을 박탈당하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최근 건강이 급격히 악화하여 서울의 한 요양병원에 입원했으며, 그곳에서 생을 마감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요양병원 입원 전까지는 서울에서 홀로 지내온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의 발인은 27일 엄수될 예정입니다.

과거의 그림자, '고문 기술자' 이근안의 죽음이 남긴 것
'고문 기술자' 이근안 전 경감의 사망 소식은 과거 군사정권 시절의 인권 탄압 역사를 다시금 되돌아보게 합니다. 그의 악명 높았던 행적과 그로 인해 고통받았던 피해자들의 삶, 그리고 진정한 사과와 참회의 의미에 대한 질문을 던집니다.

이근안 전 경감 관련 궁금증
Q.이근안 전 경감이 '고문 기술자'로 불린 이유는 무엇인가요?
A.1970~80년대 치안본부 대공수사관으로 활동하며 전기고문, 물고문 등 각종 고문 수법을 동원해 강압 수사를 주도하고 거짓 자백을 받아냈기 때문입니다.
Q.이근안 전 경감이 연루된 주요 사건은 무엇인가요?
A.김근태 전 의장이 고문당한 '민청련 사건'과 '서울대 무림 사건' 등에 연루되어 가혹 행위를 주도한 인물로 지목되었습니다.
Q.이근안 전 경감은 사망 전 어떤 활동을 했나요?
A.출소 후 목사로 활동하며 반성하는 입장을 밝혔으나, 목사직을 박탈당했습니다. 최근 건강 악화로 요양병원에 입원했으며, 그곳에서 사망했습니다.
